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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음악

240503-0507 문 팰리스 (폴 오스터)

by 빵굽는 타자기 2024. 5. 11.

<달의 궁전> 초판(97.10.20.초판 2쇄)을 주문했다.
97년 초판이 나왔고, 내가 구입했던 건 98년이었을테니 크게 다른 판본은 아닐 것이다.

26년 전 구입했던 나의 <문 팰리스>는 친구와, 그의 로맨스 사건과,
군대라는 우리의 사회에서의 부재 기간에 얽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신판과의 차이점이라면 일단 제목이 <달의 궁전>으로 바뀌게 되고,
'테슬라'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텔사'로 표기되어 거슬린다는 것 정도 :(

* * *

고전문학만 소설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십대 시절의 나.
상경 직후 주위 사람들이 '하루키' 주제로 열띤 논쟁 벌이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고
세상에는 '요즘 유행하는' 작가라는 것도 있구나.. 처음 생각했다. 진짜 순진했거든.

그래서 '요즘 책'들은 어떤 게 있나 컴퓨터통신 게시판을 뒤져 고른 게 바로 이 책.
이후 군 시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30대가 되어 다시 상경했을 무렵, 30대 중반 양평에서 머물던 때.
적어도 삶의 순간순간 한번씩은 이 책을 펼쳐 봤다.
완성도를 떠나서 가장 애정하는 오스터 소설인 건 사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는
사람들이 '요즘 누가 하루키, 오스터를 읽냐?'고 말하던 때도 있었고
독서가 아예 극 마이너 취미로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경험도 있다.

그리고 이제 40대가 되어서 <달의 궁전>을 다시 읽게 되었다.

* * *

이 책은 크게 주인공 포그가 몰락과 구원을 경험하는 시기,
에핑을 만나 그의 기억을 전달받는 과정,
그리고 스탠리 포그와의 만남. 세 파트로 나뉘는데

여러번 읽어도 바뀌지 않는 감상이라면 분량조절에 실패한 작품..이라는 생각.
삼촌과의 이별, 문학 가구 위에서의 삶,
'MOON PALACE' 네온 사인과의 만남, 키티의 구원.
첫 파트는 내 인생의 문장들이라 할 정도로 읽을 때마다 빠져든다.

하지만 에핑의 이야기는 캐릭터의 성격 만큼이나 싸구려 활극처럼 느껴지고, 지나치게 길다.
마지막 파트의 갑작스런 우연은 늘 과하게 느껴졌고, 지나치게 짧다.
전후의 몇몇 작품들에서도 작가는 단편적 재기 외에
장편적 구성과 긴 이야기의 마무리에 있어 늘 아쉬움을 남겼다.
비슷한 시기 작품 중 <뉴욕 삼부작>이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구성상 차이 때문일 것이다.

40대가 되어서 다시 읽게 된 이 작품의 감상평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얼마 전 <4 3 2 1>을 읽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해 본다 :

폴 오스터는 변방으로 밀려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쓰다가
조금씩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했고,
후기에는 병든 인물들의 내면으로 복귀했었다.
<4 3 2 1>은 작가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집착했었던 가능성들과,
우연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다.

폴 오스터는 과잉된 문장들이 독자의 감정을 넘어서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작가로
내게도 늘 간결한 문장들만으로 사고의 여백을 제공하면서 내 삶 속에 머물렀었다.

우연은 분명 매력적인 소설적 장치지만, 현실에서 도박을 걸기에는 어려운 대상이다.
하지만 '저 코너를 돌아서면,
오랜 세월 그리워했던 그 사람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라는 건 사실이다.
20대에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 너무 어렸고, 30대까지도 부족했던 게 사실이니까.
<달의 궁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와의 첫 만남이었다는 '우연'이
이제는 조금 이해되는 것 같다.

* * *

사랑하는 아내가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소설가가 글을 쓰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을 꼭 안아주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폴 오스터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의 이 말을 덧붙인다면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폴 오스터 소설이 그렇다구? 그 냉정한 양반 소설이?"

이제는 이렇게 답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겠다.

"그래, 그렇다니까. 우리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우리 주위 많은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우연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해 보라구."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2024)

<블랙 독 에디션> CD와 <알바트로스 에디션> LP를 구입.
앨범이 도착하기 직전, 스위프트가 "실은 더블 앨범이었지롱!"을 시전함.
(최근 들었던 가장 따뜻하고 기분 좋은 소식이었음)
그렇다면 CD도 두 장? 오오~
그건 아니고, <앤솔로지> 버전은 스트리밍으로만 감상 가능.

첫 인상이 막 좋다! 이건 아니고, 아직 조금 더 감상이 필요하지만
보컬(실력이 아니라 보컬트랙의 활용)이 한 단계 더 섬세해진 건 인상적이다.

뭐, 아무튼 그녀의 마르지 않는 창작력에 경외와 감탄을 전하면서 감상함.
팝 역사에는 수없이 많은 스타들이 있었지만,
이런 타입의... 커리어 초기도 아니고... 중기라고 해야하나, 후기라고 해야하나
이런 시기에 '곡을 진짜 막 미친듯이 찍어대는' 창작가는 또 없지 않았나?
앨범을 10장 넘게 만들면서, 추억팔이의 마수에 빠지지 않고
기어코  커리어 중반 이후에 최고작을 만들어 내는 가수라면 무조건 존경할만하다.

80년대, 마이클 잭슨이라는 재능을 즐겼던 팝 팬들의 기분도 조금은 알 것 같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