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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책 '25

나무 (고다 아야)

by 빵굽는 타자기 2025. 4. 27.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 히라야마는 쉬는 날마다 중고 책방을 찾아간다. 책방 주인 역을 맡은 이누야마 이누코는 성우이자 배우로 책방 장면마다 강렬한 허스키 보이스로 주인공이 고르는 책에 코멘트를 덧붙인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과 고다 아야의 <나무>가 책방에서 히라야마가 고르는 책들이다. 국내에서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 <캐롤>의 원작자로 유명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대해서 "불안의 묘사에 천재적인 작가. 덕분에 공포와 불안이 다름을 알았다"라고 말하고, 고다 아야에 대해서는 "너무 저평가되었다. 같은 단어라도 이 작가가 사용하면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한다. <11>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으며 <나무>는 2017년에 달팽이출판사에서 나왔었으나 절판되었고, 2024년 12월에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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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책까지 선물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마냥 착한 수필집이다. 문장에도 큰 편차가 없고 감정도 굉장히 촘촘해서 13년 6개월에 걸쳐 쓰여졌다는 사실이 쉬이 믿기지 않는다. 딸과 사위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지만, 그 외에는 그저 마음씨 여린 작가가 식물을 마치 자식처럼 대하며 살아가는 기록이다. 길고양이를 보듬고 싶은 사람처럼. 그러다가 전문가들의 일침에 깜짝 놀라며 생태계의 비밀을 깨달아 가는 건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 나는 이 책을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기차 안에서 읽었는데, 기차 여행이 참 포근하고 따뜻했다.

<나무>외의 작품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는데, 언젠가는 그녀의 소설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의 이력을 정리해 놓는다. 작가의 아버지 고다 로한의 대표작 <오층탑>은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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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 아야 (幸田 文)

일본의 수필가이자 소설가.

1904년 도쿄 출생. 일본의 메이지 시대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고다 로한의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년 후에는 언니를, 그리고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엔 남동생마저 잃었다.  

1928년 청주 도매업을 하는 이쿠노스케와 결혼해 이듬해 딸(다마)을 낳았다. 그러나 가업이 기울며 10년 만에 이혼하고 딸과 함께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194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다.

43세때 아버지 고다 로한의 삶과 문학을 기리며 부녀의 일상을 기록한 <잡기>, <종언>, <장송의 기> 등을 발표하면서 데뷔한다. 

1954년에 발표한 단편집 <검은 옷자락 (黒い裾)>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 1955년에는 소설 <흐르다 (流れる)>로 신초샤 문학상과 일본예술원상을 받았다. 1973년 <싸움>으로는 제12회 여류문학상을 수상. 이후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특유의 관찰과 섬세한 감성으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흐르다>를 비롯해 수필 <카케라>, 단편 <히나>, <군소> 등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딸인 아오키 다마, 그리고 손녀 아오키 나오도 소설가.

1990년 가을, 향년 86세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