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게임 '25

샤이닝 포스 3 - 시나리오 1 : 왕도의 거신 (세가새턴)

빵굽는 타자기 2025. 3. 28. 21:25

조카가 어린시절에 사용하던 일체형 PC가 버려졌다는 걸 알고 얼른 주워다가 예전부터 계획했던 레트로 게임 머신을 만들기로 했다. (조카에게 새 컴퓨터는 못사줄망정 이런 삼촌이라니...) 레트로아크와 프론트엔드 ES-DE를 묶어서 아케이드 게임, PC-엔진, 메가드라이브 게임들을 담고 blueMSX와 EPSXe, Mesen, PPSSPP, 두기의 고전게임 런처, ScummVR, 스팀과 에픽 런처 등을 설치했다. PS2와 게임큐브 이상은 좀 버거워할 사양이라서 PS1 시대까지만 담는 것으로 결정했다. 창고에서 굴러다니던 듀얼쇼크 3과 4를 물리고, 4:3 모니터를 측면에 붙이고, 세로 비율 게임들을 위한 360도 회전 스탠드도 따로 구입했다.

영광스럽게 1차 라인업에 포함된 작품들은 : 스타디움 히어로, 스타디움 히어로 '96, 슈퍼슬램, 갈스패닉 S, 피의 론도, 월하의 야상곡, 바리스 2, 아틀란티스의 운명, 프런트 페이지 스포츠 풋볼 프로, 소닉2, 소닉 매니아, 메탈 슬러그 앤솔로지, 캡콤 벨트 스크롤 컬렉션, D&D크로니클스, 그라디우스 컬렉션 등이다. 테크모 월드컵 '98을 위해서 마지막에는 mame 최신 버전도 따로 설치.

그 과정에서 20년 전부터 모아왔던 레트로 게임들을 뒤지다 발견한 게 바로 <샤이닝 포스 3>다. 세가 새턴은 친숙하지 않은 머신이었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97년 12월부터 98년 9월에 걸쳐 무려 3부작으로 발매된 초대형 프로젝트로, 형편 없는 3D가 아니라 도트 그래픽으로 깔끔하게만 제작되었더라면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신들의 유산>과 <검은 용의 부활>을 모두 열렬하게 좋아했었고 내게는 한 시절의 추억들로 기억된다. 

GBA용 롬팩과 책장에 꽂혀있던 MD 정발판 대화집. MD 패키지도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텐데...

MD 버전은 12메가 쇼크! 잡지에서 광고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고 (전투 장면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리메이크작은 미국에서 외롭던 시절 닌텐도DS에 담겨서 나를 위로해준 친구같은 작품이었다. 5년쯤 전에 클리어했던 2편 역시 1편만큼은 아니어도 꽤 재밌게 즐겼던 기억. <샤이닝 포스 CD>는 아직 플레이해 보지 못했다.

3편, 시나리오 1의 플레이는 SSF R12 버전과 가상 드라이브 유틸을 사용했다. SSF 기능상 이미지 구동도 가능하다. <데이토나 USA>는 정상적으로 플레이되는데, 샤이닝 포스 같은 경우는 사운드트랙 재생이 안 된다. 가상 유틸을 쓰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싱크로니시티 시스템이라 불리는 세이브 파일 연계 기능이 있어서 에뮬레이터 상태 저장이 아니라 게임 자체의 저장 기능이 필수. 반드시 바이오스를 사용하고, 바이오스 메뉴 상에서 내부 혹은 외부 메모리 확보 작업을 해야만 한다. 

*

레트로 게임 머신 개시작으로 시나리오 1을 마침내 클리어. 일단 초창기 3D 치고도 심하게 구린 수준의 그래픽 때문에 자꾸 포기하고픈 충동이 치밀었으나, 전투 자체의 재미는 여전했기 때문에 엔딩까지 도달했다. 1편도 그러했고, 명랑했던 2편의 후반부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3편의 이야기 역시 꽤나 무겁고 정치적이며 복잡하다. 연출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심각한 주인공들이 조금 우스워보이긴 한다. 전투의 무대들은 여러모로 1편을 떠올리게 한다. 유령의 마을이나 좁은 건물 안에서의 전투, 빨강머리 마법사나 간츠, 잣퍼를 떠올리게 하는 특수 캐릭터들, 맵병기와의 전투,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본풍 클래스 캐릭터들이 특히 그렇다. 

난이도는 시리즈 전통의 최강 마법 <리턴>으로 인해 쭉쭉 떨어지지만, 나처럼 속성 클리어를 원하는 플레이어에게는 꽤 어려운 수준. 특히 HP가 20에 이르지 못하는 초반부에는 재도전 없이 전투를 클리어해 나가기가 굉장히 어렵다. 나는 정예 12명만 데리고 클리어할 생각이었는데, 후반부에 반드시 2진으로만 클리어해야하는 전투가 등장하는 것도 난제. 주인공이 메인 딜러인데, 적들에겐 최우선 타겟이기 때문에 전방에 나서면 반드시 집중 포화를 얻어맞게 된다. 주인공이 죽으면 바로 전투 패배. 주인공 다음으로는 맷집이 떨어지는 힐러, 마법사 등이 적들의 주요 타겟인데 나중에 보니 남성과 여성 캐릭터 중에서도 여자들만 노리더라고. 약한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또 우정 시스템 발동을 위해서 스크럼을 짜고 움직이게 되면서부터는 정말 동료들과 함께 싸우는 기분이 든다. 아쉽게도 동료들의 스토리가 안그래도 빈약했던 전작들보다도 훨씬 빈약하기 때문에 애정을 갖는 것까지는 어렵지만. (예를 들어 1편의 잣퍼 같은 캐릭터는 그 강함과 캐릭터성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기억할 정도인데, 3편의 수인 캐릭터인 프랭크는 처음 만났을 때 텅빈 마을에 홀로 서서 뭔가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처럼 등장하지만, 나를 힘으로 이겨봐라! 딱 한마디 할 뿐이고 본진까지 밀고가서... 동료 삼으면 이후로는 어떤 스토리도 없다...)

인상적인 장면은 2장에 철로 위 전투에서 망명민들 구하기, 그리고 6장에서의 브라프 군과의 전투. 어려운 전투들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특히 브라프와의 전투는 별 지형 효과가 없는 맵에서 그야말로 아군과 적군이 정면으로 격돌하는데 아군 절반 이상이 쓰러지는 대혈전이었다. 마지막 전투에서도 멋모르고 다리 양옆으로 군을 나누어 피신시켰다가 절반이 물에 휩쓸러가는 바람에 셀프 제작 고난도 전투를 치렀다. 힐러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또 최종 보스 뒤에 자리잡은 마법사들을 공격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조인 동료 엘다가 연속 블러디 스핀(막대한 데미지를 주고 자신은 HP까지 회복)으로 대활약하면서 승리. 그래서 시나리오 1의 MVP는 엘다로 선정한다.

MVP니까, 일러스트 첨부함

시나리오 2는 언젠가는 플레이하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당장은 아니다. 질이 안 좋은 3D 그래픽에 수십시간 넘게 집중하다 보니까 아름답고 정교한 최신 그래픽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