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음악 '25

청하 - Alivio

빵굽는 타자기 2025. 2. 14. 04:57

오랜 세월 내 최고의 드라이브 음악은 아무로 나미에의 후기 앨범들이었다. <Uncontrolled> 부터 <Feel>, <_genic>으로 이어지는 3부작은 특별히 더 좋아했었다. 그녀의 노래들이 스트리밍 사이트들에서 사라진 후로는 고음질 MP3 플레이어 시절에도 사용하지 않던 FLAC 포맷으로 앨범들을 리핑해서 차안에서 듣고 다닌다. 

뭐, 청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아무튼 댄스곡 이야기 중이다. 꼬맹이 시절 마이클 잭슨 춤 따라 추던 때부터 쭉 디스코 기반의 댄스곡들을  좋아했었다. 힙합 기반 댄스곡들만 득세하던 시절을 지나서, 이제는 힙합 비트가 촌스럽게 들리는 시대. 다시 한번 디스코의 시대가 왔고, 좋은 댄스곡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지만... 뭐랄까,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 좋은 댄스 '앨범'이 많지 않다는 건 아쉽다. 

청하라는 가수는 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데뷔 오디션도 보지 못했고,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열두시 경에는 그녀와 선미를 거의 구분하지 못했으니까. 뽕끼를 섞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춤 잘 추는 가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서의 <Bad Girl> 무대를 보고나서. '싱어지만 댄스를 소화해 내는' 가수보다는 아예 '댄서 DNA를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가수를 더 좋아하는데, 당시 무대의 주역인 댄서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는 겸손한 태도도 좋았고, 크루의 일원인 것처럼 작업에 임하는 모습도 멋지게 보였다.

무엇보다 <Querencia>와 <Bare & Rare part 1> 모두 고른 완성도를 지닌 '앨범'으로 훌륭하다는 게 맘에 들었다. 아쉽게도 <Bare & Rare>의 후속작은 나올 수 없게 되었지만, 이번 EP가 무려 8곡이나 수록된 정규 앨범급 볼륨으로 발매가 되었다.  (그런데 패키지는 보석상자처럼 작고, 예전 아니메 싱글 CD로나 봤었던 3인치 CD가 들어있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은 곡들을 수록하고 있고, 트랙 선정과 마무리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느낄 수 있다. (어차피 요즘 피지컬 CD야 그냥 굿즈 개념인데, <I'm Ready>나 <Eenie Meenie>, <Algorithm> 같은 곡들도 좀 같이 수록해 주지... <I'm Ready>는 정말 피지컬 트랙으로 소장하고 싶은 곡이다)

청하의 비트는 하이브리드 형태면서 보다 힙합 성향으로 치우쳐있는데, 사실 요즘 차트를 공략하기에는 조금 난이도가 있는 노래들이란 생각도 든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고집과 확실한 기준이 느껴지기에 내게는 행복한 음악이지만. 그래도 음원이 많이 팔려야 계속해서 좋은 노래들을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응원합니다.